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Notre histoire
SHURI
L'hiver et la mer de la perte
바다를 보러 갈까. 아직도 나는 이름 없는 바다에 잠겨 있어, 그렇게는 말할 수 없던 탓에. 유리는 내내 처박혀
있던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. 답을 고르는 잠시의 틈도 허락지 않겠다는 듯 등을 돌린 슈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. 뒤따라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양새로, 언제든 맞출 수 있을 만큼의 느릿한 걸음으로. 유리는 그런 것들에 이겨본 적이 없었다. 저항도 거부감이 들 때나 하는 것이었다. 무언의 배려를 습관처럼 건네는 그를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.
les aveux d'une fille
유리는 비로소 타인의 눈을 마주한다. 심유한 보랏빛 아닌 색의 눈동자에서도 어떤 감정을 읽는 일들이 잦아졌다.
하지만 그 모든 순간 살면서 가장 잦게 닿은 자색의 홍채나, 서늘한 듯 부드러운 온기를 머금은 음성을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.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 심장의 박동은 너울의 형태다. 일정하게 피부 아래에서 맥동하던 심장이 그의 곁에선 한없이 일렁이는 파도가 된 것 같으니까. 눈을 떠보면 주변은 온통 흰색 꽃잎의 부드러운 파동이었다.
la sincérité du garçon
새파란 하늘, 그 중심에 서있는 건··· 슈, 그 자신이었다. 파랗고 맑은 하늘을 담은 눈이 고한다. 그저 그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만으로 적중시킬 수 있다고. 저 광막한 창공을 아득한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 없이 그 눈에 담긴 전부를 보기만 하면 된다고. 슈는 유리의 세상 가운데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윽고 이해한다.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던 거야. 아주 오랫동안··· 깨달음이 너무 늦었지만.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바람을 실은 여름이 지척에 있었다. ⓒ dabe 님